“'문 앞의 꽃다발' – 어머니의 이름으로그날,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가 아닌 ‘한 여자’로서의 엄마를 보았다.”
---
나는 서른아홉이 되던 해, 어머니와 3개월째 말없이 지냈다.
시작은 사소한 말 한마디였다.
“너도 애 낳아봐. 그때 가서 알 거야.”
육아와 회사에 치이고 있던 내게, 그 말은 돌처럼 가슴을 눌렀다.
어렸을 적 엄마가 늘 입에 달고 살던 말,
"엄마도 사람이다"라는 변명처럼 들려서 더 서운했다.
그날 이후, 나는 엄마와 연락을 끊었다.
명절에도, 아이 생일에도.
남편 몰래 엄마가 아이 옷을 보낸 것도 돌려보냈다.
---
그러던 어느 날, 집 앞에 이름 모를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.
카드에는 단 두 글자.
“미안해.”
전화도 메시지도 없던 엄마의 방식이었다.
딱히 감동적이지도 않았다.
그래, 내가 먼저 사과하길 바라는 거겠지.
그 꽃은 쓰레기통에 버렸다.
---
하지만 며칠 뒤, 외삼촌의 전화를 받고 나는 무릎이 꺾여 주저앉았다.
“엄마가... 심장 수술 받으셨다. 연락도 없이 버티다가 결국 쓰러졌어.”
병원으로 달려가니, 작아진 엄마가 산소 마스크를 낀 채 누워 있었다.
나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.
“니가... 안 올 줄 알았다.”
그 말을 들은 순간, 나는 다 무너졌다.
---
우리는 참 많이도 오해했다.
엄마는 내가 독립하는 걸 기뻐하면서도
한편으로는 소외감을 느꼈다.
나는 엄마가 잔소리하며 간섭하는 게 지겨웠고,
그걸 사랑이라 받아들이는 여유가 없었다.
어릴 땐, 엄마가 밉기만 했다.
가끔 친구 집 엄마처럼 다정하지 않다고,
왜 맨날 피곤한 얼굴만 하고 있냐고.
하지만 그 엄마는,
이혼 후 혼자 두 아이를 키우며
일터와 집을 오가느라 늘 몸이 부서져 있었다.
엄마도 여유가 없었다.
우리는 서로, 그냥... 지쳐있었던 거다.
---
수술은 잘 끝났다.
엄마는 회복 중이었고, 나도 엄마에게 작은 화분을 보내기 시작했다.
그 위에는 짧은 메모가 늘 함께였다.
“잘 자요, 엄마.”
“오늘은 감기 걸리지 마요.”
“그 꽃다발, 내가 버려서 미안해요.”
---
그렇게 우리는 말없이, 다시 연결되었다.
내 아이가 어느 날 물었다.
“엄마, 할머니는 왜 맨날 꽃을 받아?”
나는 대답했다.
“엄마가 너무 늦게 보낸 편지들이라서 그래.”
---
작품의 메시지
이야기의 핵심은 ‘지나간 시간 앞에서도 용서는 가능하다’는 것입니다.
우리가 놓치는 진심은 가까이에 있지만, 너무 익숙해서 더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.
이 이야기는 단순한 모녀 간의 화해 이야기가 아니라,
모든 관계에서 진심을 전하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공감형 글입니다.
---